보고 듣는데 대하여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도 날씨 좀 춥고 이제 아마 내일부터 차츰 추워오는 모양인데 이제 동한 준비 좀 단단히 하시고 이제 앞으로 좀 추위하고 싸워야 하겠는데 한번 힘차게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오늘은 우리 보는데 대해서 보고 듣고 하는데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람은 오래 살면 귀도 먹고 눈도 멀고 정신도 흐려지고 이렇게 해서 나중 죽을 때 가서는 기억력도 없고 뭐 봐 둔 게 언제 생각나지도 않고 다 이렇게 되는 모양 같습니다. 예수님 오신지도 1900년이 넘었는데요. 아마 영적으로서 분명히 예수님 말씀을 꼭 우리가 분명히 알아 뒀다가 그대로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2000년이 문제가 아니고 3000년이 문제가 아니죠. 그렇지만은 예수님이 3년 동안 제자들과 같이 다니면서 복음을 전해주셨고 이제 끝에 가서는 그 말씀을 확인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이제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이 성경 전부를 두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1900년 전에 오셨던 예수님이 우리에게 신신부탁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된다. 또 나중에 모두 이단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진리를 어지럽게 하고 사람의 계명을 좇아서 전부 행하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그 모든 언약과 계명은 저버리고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가선 점점 멀어져 가지고 들은 것도 없어지고 본 것도 없어지고 이렇게 해서 1900년 전에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그 말씀과 우리에게 실지 교훈으로 가르쳐 주신 것은 지금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이렇게 해서 완전히 그만 변해지고 말았습니다.
(마 7:13-15)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이렇게 좁은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 누가복음에도 있고 마태복음에도 있고 여러 군데 이렇게 기록한 말씀도 있고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인데 지금은 좁은문으로 들어가면 멸망하는 줄 알고 예수님 말씀의 반대로서 자꾸 넓은문으로 들어가라 좋아하고 사람 많이 가는데 라야 뭣이 거기 구원이 있는가 보다 하고 자꾸 거기 들어가요. 그러니까 완전히 예수님의 가르친 말씀하고 반대죠. 완전히 반대라고, 지금 저게 10만 명 20만 명 30만 명 그냥 우글우글하게 모여서 빽빽하니 말이죠. 좁아서 앉을 자리도 없이 만든 그런데 가서 좋다고 자꾸 기어들어가고 하나님의 진리교회 이렇게 좁은 문은 좁고 그렇지만은 우선 사람도 적으니까 말이죠. 앉는 자리는 넉넉하니 있죠. 그런데 반대로 모두 생각을 합니다. 좁은문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저건 사이비 종교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그래요. 마18장 보면 예수님이 어떤데 같이 하시겠다 하느냐 하면 사람만이 있는데 같이 하시겠다고 하질 않았어요.
(마 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꼭 두세 사람 왜 100명 200명 천명 이천 명 만 명 십만 명 이렇게 들 모인데 내가 있겠다고 하는 말씀은 없고 두세 사람이 모인 그곳 내 이름으로 모인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겠다. 그러니까 너희는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으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그것이 1900년 전에 하신 말씀인데 지금은 그 말씀이 언제 누가 했던고 이렇게 됐어요. 이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고 "마귀 한 말이 아니겠느냐?" 이런 정도로 나가요. 그러니까 어떻게 됐든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이런 문제들을 잘 우리가 생각해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꼭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시 29:4-6)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론으로 들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 도다』
(신 29:4-6)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너희로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십 년 동안 광야 지금 시나이 반도라 하는 그 광야를 갖다가 40년 동안 걸어오시는데 그리고 통행하시게 하시는데 그렇게 통행하셔도 옷도 헤어지지도 아니하고 낡아지지도 아니하고 신도 해어지지도 아니하고 떡도 먹지 않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았고 독주도 마시지 않았는데 그렇게 하신 것은 주는 너희 하나님이신 줄을 알게 하심이라.
그런데 이 말은 왜 하시느냐 하면 신명기에는 언제 기록했느냐 하면 광야 40년을 지내 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무렵에 저 모압 평지 여리고 맞은편에서 바로 유월절도 지키고 거기서 지금 온 이스라엘 회중을 모아놓고 하신 말씀입니다. 근데 왜 그때까지 보는 눈도 안 주고 듣는 귀도 안 주고 깨닫는 마음도 왜 안 주셨을까?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내는 동안 왜 그렇게 하셨을까 하면 이것이 오늘날에 와서 예수님이 오신지가 1900년이 지나갔는데 이 1900년 동안에 이루어질 것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도 못하고 우리 마음이 있어도 깨닫지도 못하고 1900년 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 그 말씀 한마디도 눈에 귀에 남지도 않고 마음에도 남지 않아요. 이렇게 될 것을 미리 내다보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하신 겁니다.
(시 119:18-22)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를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니 훼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우리 역대 구약에서 쭉 내려오는 역대 선구자들을 보면 첫째는 모세가 굉장히 좀 그러한 분이죠 하지만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율례와 규례와 법도를 다 가르쳐 줬기 때문에 그는 마음으로도 깨달을 수 있고 눈으로도 볼 수가 있고 귀로도 들을 수가 있는 그런 은혜를 주었고 또 그 다음 모세 다음 여호수아가 또 모세의 후계자로서 했을 때에 또 하나님을 섬기는 법도와 규례를 깨닫게 해서 후계자가 됐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첫 임금이 누구입니까? 사울왕이 있었는데 사울왕 절기 지키는 것 나왔어요? 절기 말은 했습니까? 사울왕은 절기말도 안하고 그랬는데 뭐하나 지키는 거 있냐면 월삭 하나 지키는 거 있어요. 근데 다윗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켜야만 된다는 거 이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그는 어릴 때로부터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데 가장 유명한 그런 사람이 됐던 것입니다.
(왕상 2:1-3)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느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형통하다는 건 뭡니까? 아주 뭐든지 거침이 없이 잘된다고. 어떤 분은 다윗은 유월절도 안 지키고 뭐 절기 안 지킨 걸로 생각하지만은 다윗이 그것을 몰랐으면 이렇게 말할 수가 없지요? 모세의 모든 율법 기록한 그 규례와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다 지키라고 했으니까 그 분이 모를 리가 없어요. 그래서 그 모든 것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이 항상 같이했어요. 하나님이 같이 하실 때에는 힘도 어디서 나오는지 힘도 사자를 막 때려잡고 골리앗 대장을 막 물매로 냅다 쳐 때려잡고 갖다 치면 또 명중을 하고 가다 척척 말 대로 그만 대면 들어맞아요.
그래서 이 성경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존중시 하는 사람을 보고 하나님이 다윗을 보고 어떤 사람이라고 그랬어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은 그럼 그 반대는 뭐라고 할까요? 다윗이 절기와 그 모든 것을 깨달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존중시 될 때에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는데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 뭐라고 할까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반대로 뭐라고? 나를 거역한 자라,
그러니 오늘날 모든 목사들 신학박사들 전 세계 그냥 많은 그리스도인 가운데에서 성경 안다고 강단에 서서 우쭐거리는 것들 다 그럼 하나님 보시기에 뭐라고 그래요? 그 사람들 보고? 그 사람들 보고 내 마음에 합한 자라 그래요? 그래 놓고 선 성령 받았다고 하고 그거 뭐 성령 충만하다 하고 그러고 할랄랄라 할랄랄라 하는 사람들 성령 충만. 할랄랄 하는 게 성령 충만한 거요? 우리 눈이라는 거 참 내가 이거 뭣 때문에 걸리적 거리는 거 왜 써요? 이거? 이게 왜 쓰냐 하면 나 칠일성…있어서 할 수 없이 뭐 좀 볼 라니까 쓰는데 그 전에 공자, 어떤 사람이 공자님 하도 뭘 잘 아신다고 해서 그래서 뭘 좀 물었대요. 뭘 물었냐면 저 먼 산에 있는 저것 왜 잘 안보입니까? 그건 멀어서 그렇지. 그래요? 그럼 요 가까운 거 요 눈썹은 왜 안보입니까? 가까운데 있는 눈썹 여러분 가까운데 있는 눈썹 보여요? 안보이죠? 참 이상합니다. 우리 눈이 이렇게 있어도 아주 가까운 요거요. 가장 적은 세포 안에 있는 거 못 봅니다. 또 그리고 먼데 있는 거 못 봐요. 옛날엔 그래서 참 모르는 게 많았고 그냥 우리 병균이 우글우글해도 그게 뭐인가 보지도 못하고 그랬어요. 근데 요새는 다 본단 말이예요.
1609년경에 이탈리아 갈릴레오라는 천문학자가 있었죠. 간단한 망원경을 만들어 가지고선 우주만상을 갖다 구경을 했다 이 말이예요. 망원경 멀리 보는 거 그 사람이 그렇게 해가지고 우주천체에 대해 연구도하고 지구는 공중에 떠서 태양의 궤도를 위해서 돌아간다. 이래가지고서 그만 바른 말하다 결국 천주교 교황청에 잡혀가 가지고 죽었단 말이 있는데요. 그 다음에 1670년경에는 네덜란드 사람인데 레벤후크라는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은 현미경이란 걸 연구했어요. 현미경 뭐하는 거예요? 요건 아주 가까운데 보는 거예요. 아주 적은 거 그러니까 먼데 보는 것도 필요하고 가까운데 보는 것도 필요하단 말이예요.
그래서 이 사람은 현미경을 연구해 가지고선 가장 적은 물질의 세계를 보고 있어요. 오늘날 그걸로 인해서 의학학자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 죽어가는 사람도 고치는 그런 걸 통해가지고 가장 그 세균 그 적은 물질의 병균 같은 것을 전부 다 발견해 가지고 또 의학을 발견해 가지고 그런 거를 다 멸종시키는 이런 걸 해가지고 많은 사람의 병도 고치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먼데 것도 보고 가까운 것도 볼 수 있는 이것이 필요한데 우리 영적으로도 먼데 것도 보고 가까운데 것도 봐야 되겠는데 쫌 1900년 전에 예수님 오셨을 때에 있었던 그것 좀 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걸 모두 여러분들이 본다면 예수님이 하신 걸 지금 보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모두 그걸 못 봐요. 이렇게 연구를 해서도 그건 못 봐요. 만약에 그런 거를 볼 수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여러분 그 자리 못 갑니다. 마귀들이 먼저 뛰어 들어 갈라고 야단하지. 예수님은 그 당시에 오셔가지고 1900년 전에 오셔가지고 어떻게 하셨느냐면
(요 9:3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다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아직도 죄가 그냥 있다. 그냥 그대로 죄가 남아있다. 그러면 얼른 생각하면 예수님이 또 심술궂은 분 같이 생각하지만은 사실상 보기만 제대로 보면 야 왜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본다고 하는 놈들이 삐뚤어 보기 때문에 그래요. 바로 봐야 할 텐데 삐뚤어 보기 때문에 그만 본다고 하는 거 보지 못하게 만들었단 말이예요.
차라리 못 보는 사람한테 보는 거 가르쳐 주는 게 낫지 본다고 하는 녀석들이 제대로 보면 되겠는데 삐뚤어 보거든 그래서 그때 본다고 하는 사람들은 소경 되게 하고 보지 못한다는 하는 자들을 오히려 보게 한다. 그것은 무슨 뜻이냐면 그때 바리새교인들이나 서기관이나 제사장 레위 사람들은 가장 본다고 하기 때문에 사실상 예수님은 그들로 하여금 소경 되게 했고 갈릴리 해변가의 어부들 불학무식한 사람들 이러한 분들은 오히려 진리를 깨닫게 해가지고 영생에 들어가게 하셨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바로 봐야 될 텐데 바로 보지 못하고 삐뚤어 그것은 1900년 전에 바리새교인들이 그런 게 아니라 오늘날 본다고 하는 사람들 많아요. 성경박사들 많단 말이요 그러니까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니고 바로 오늘날 지금 본다고 하는 그 사람들에 대한 해당된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 15:14)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마23장16~19절)까지 보면 소경 된 인도자여
이렇게 해서 예수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얼른 보면은 예수님이 심술궂어서 괜히 일 잘하는 사람보고 괜히 저런다. 생각하지만은 사실은 그런 게 아닙니다. 저도 이렇게 말씀드리면 저 괜히 안 선생님 심술궂게 남아는 사람보고 괜히 모른다고 한다. 이렇게 하지만은 이건 진정으로 하는 말이지만 모릅니다. 모두 다 소경 되어 있습니다. 본다고 하게 되면 1900년 예수님이 하신 것을 다 알아야 되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우리가 깨닫고 해야 되는데 안 하거든요 그러니까 안다고 하면서도 소경인 것을 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듣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 귀가요 그저 우리 귀에 적당한 소리만 듣지요. 적은 소리 여러분 못들을 거예요. 내가 말한 적은 소리 한번 들어보겠어요? 뭐라고 그랬어요? 너무 큰소리도 못 들어요. 큰소리 못 듣는다는 건 이 지구가 태양의 궤도에 돌아가면서 그 굉장한 큰 소리를 내지만은 이 소리를 못 들어요.
(롬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이건 어떤 무리냐면
(롬 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구원을 얻을 남은 자 적은 무리가 있고 그 외에 해변가의 모래 수같이 많은 그런 무리가 해변가의 모래 수같이 많다는 무리인데 현재도 보면 15억에 달하는 세계에 큰 많은 믿는 사람들을 보고하는 말인데요. 왜 그 사람들이 완악하여 졌느냐? 그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깨닫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이 말이예요. 그렇다는 건 어디 그렇게 기록했냐면
(롬 11:8)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니까 이게 다 어느 때 그렇단 말이냐 하면 신29장4절에서 봤는데 이스라엘 백성 광야에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40년을 거쳐 오면서도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았다는 그 말씀이 왜 거기 있었던 그걸 갖다 여기에 붙였느냐? 왜 롬11장8절에 갖다 말했느냐? 하는 것이 오늘날 그렇다 그 겁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지만은 그 사람들이 결국 완악하여져서 멸망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그렇게 된 동기가 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 이 세상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박사, 무슨 천문박사, 지리박사, 무슨 의학박사, 공학박사 할 것 없고 무슨 대통령, 국회의원 세계 모든 정치인들이 다 섞여 있어요. 왜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그걸 모를까?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면 원인은 하나님이 법을 깨닫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전부 다 영적으로는 봉사가 돼있고 귀머거리가 됐어요.
그래서 마지막 이 세상 끝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해변가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결국 멸망으로 다 들어가게 될 때 다 완악하여졌다. 그 이유는 오늘날까지 그들에게 듣는 귀도 주지 않으셨고 보는 눈도 주시지 않았고 깨닫는 마음도 주시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3500년 전에 역사가 반복해서 1900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자면 저 유대인들 바리새교인들 서기관들 제사장 이 유력한 그 가장 하나님의 법을 섬긴다고 하는 그 사람들에게 해당됐고 또 마지막 끝에 가서 그 예언이 아주 마지막으로 예언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어디로 들어가라고요? 좁은문으로 들어가서 1900년 전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쳐 주셨느냐 하는가? 우리에게 어떻게 언약을 세워주셨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좀 우리 눈을 밝혀서 1900년 전에 있었던 것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연구해서 하나님의 뜻이 뭐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연구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앞에 너희들은 내 마음에 합한 자들이다. 이렇게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여러분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때는 가까웠고 우리의 갈 길은 가야 되겠는데 우리 갈 길에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안 돼 있는지 힘써서 연구하시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