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 교회

하늘 예루살렘 성전


하늘예루살렘 성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갈 4:22-26)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여기 지금 갈라디아 4장22절부터 26절까지 읽었는데 이 기록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이 무슨 말인가 잘 모릅니다.


창세기에 있는 여자를 들어서 말씀드리겠는데 지금으로부터 4000년이 거의 지난 3900년 전 일입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처음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우리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이 아브라함이 나이 90세 되도록 아들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없어 가지고 이제 자기 생각으로는 할머니도 80살이나 되었고 도저히 아들 낳을 가망이 없어서 자기 후사를 정해야 되겠는데 후사가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자기 집에서 길러 온 종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주 씩씩하고 튼튼한 종이 하나 있었는데 엘리에셀이라고 하는 종이 하나 있었습니다. 창세기15장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데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어요. 그 아브라함에게 나타날 때 먼저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창14장18절에 보면 살렘왕 멜기세덱을 만났던 것입니다.


살렘왕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요 살렘왕이라고 예수님을 대표하는 멜기세덱이라는 분을 말하는데 그분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 주었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노략물 가운데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이 있고 난 다음에 이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었습니다. 아마 비몽사몽간에 나타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불렀습니다. 나는 네 방패요 너의 큰 상급이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씨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집에서 키운 엘리에셀을 후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가 네 후사가 될 수 없고 반드시 네 몸에서 난 자라야 네 후사가 되리라. 그렇게 하고 밖으로 끌고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우주 만상에 많은 별들이 있었습니다. 너 저 별들을 좀 세어 보아라. 능히 셀 수가 없습니다. 네 자손이 그와 같이 많을 것이다. 우리 이치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일입니다마는 그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철저히 믿고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믿었을 때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정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을 했는데, 그 다음에 할마이 한테 가서 하나님께서 아들 하나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당신 아들 낳을 가망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는데 사라가 나이가 있고 단산했고 경수도 끊어졌는데 이것은 도저히 우리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 사라가 무슨 생각을 가졌느냐 하면 아 나는 늙었으니까 내게 좋은 몸종이 있는데 하갈을 자기 남편에게 종처럼 주었다 이 말이지요. 그를 통해가지고 아들 하나 놓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하갈을 자기남편인 아브라함에게 주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사라의 생각과 같이……내가 이집에 이렇게 귀한 아들을 낳아준 사람이라 하는 것을 알고는 상전을 박대한다. 그래서 사라는 눈물지어 가면서도 참고 그렇게 나갔는데 참으로 아들을 낳았어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얼마나 기쁠 것입니까? 나이90살 된 영감이 아들 하나 얻었으니 그 기쁘기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그래 이스마엘은 그도 한나라가 되게 하겠지만 사실은 하갈의 몸에서 난 사람이 네 후사가 아니고 사라의 몸에서 난 사람이 네 후사가 된다 이랬어요.


자 거기까지도 믿지 못했는데 이제 사라의 몸에서 그전에도 아기 못 낳는다고 아주 그만 단념하듯이 살았는데 또 사라의 몸에서 아기 낳아야 된다 이러니까 또 놀랠일이죠. 아마 사라가 나이가 한 80살쯤 됐는데 그때 80살은 요새 60살 정도나.......그래서 얼만큼이냐 14년이 지나서 14년째 든 그때 가서 사라에게 아들이 있었다 그 말입니다. 그 14년 전 하갈이 아기 낳을 때만 해도 나는 늙어서 아기 못 낳는다고 생각 들었던 사람이 약14년 후에 비로서 사라의 몸에서 아들을 낳았다. 그래가지고 한집에서 아들 둘이고 마누라가 둘이고 이렇게 됐습니다. 갈라디아4장22절부터 한 말은 그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한 가정에서 그렇게 생긴 그 일이 나중에 사라에게 아들을 낳게되니까 그간 종년에게 얼마나 구박을 받았던지 자기가 그만 아들을 떡 낳으니까 사라가 저거 쫓아내라 종년 하고 그 아들은 기업을 받을 수 없으니까 내어 쫓으라 이렇게 되어 놓으니까 아브라함이 걱정이 아닙니까? 법적으로 해서는 사라가 본마누라가 되지만은 육신으로 해서는 사라의 몸에서 낳았든 하갈의 몸에서 낳았든 아브라함 자기 자손이라 이말이요. 그래 걱정을 하고 가만히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 사라의 말 들으라 그래서 아브라함이 할 수 없어서 이제 떡 한보따리하고 물 한 가죽부대하고 어깨에다 메워서 지워서 내보냈단 말입니다. 지금 우리들 주위서 그렇게 한다면 너무 냉정하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만 예언이 되려니까 그렇게 했는데, 그래서 지금 여기 하는 말이 뭐냐면 두 여자는 두언약이다. 예언상으로 그러면 얼마나 흘러내려와서 두 언약입니까? 2000년 흘러내려온 예수님 당시 예수님부터 아브라함까지 2000년 전이거든 2000년이 넘어서 흘러서 내려왔고 2000년이 흘러내려오는 동안 그 전에는 벌써 아브라함도 죽고 하갈도 죽고 사라도 죽고 다 죽어서 땅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왜 여기다 하느냐 하면 그 한 가정에서 일어난 사건이 장차 예언이 된다. 그래서 하갈과 이스마엘은 중동에 있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과 땅에 있는 예루살렘을 표상했다 그 말이요 그리고 아브라함의 본 부인되는 사라는 나중에 14년 후에 낳았지만은 그 이상을 통해서 하늘의 별의 수와 같이 많을 것이다 하고 예언한 자손이 이삭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두 여자에서 두 언약 중에 사라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언약을 말했고, 하갈과 이스마엘은 모세율법으로 말미암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과 첫 언약을 말했다.

그래가지고 약 그것이 14년 후의 일인데 한 1400년쯤 넘어서 이삭인 예수님이 세상에 나오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하갈과 이스마엘은 땅에 있는 예루살렘과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을 말했고, 사라와 이삭은 하늘위에 있는 예루살렘 새언약을 두고 이야기했다 이 말입니다.


엄수인씨 생각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다 하니까 사라가 살아서 하늘 올라가서 예루살렘이 되고 또 지가 살아서 땅에 예루살렘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해석을 한다 이 말입니다.


(계 21:1-2)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아 뭐, 하늘에서 내려온 이 새예루살렘성이 엄수인 자기다 이거에요. 자기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우리 어머니다 했으니까, 지가 여자로서 땅에 그 하늘의 예루살렘이 내려와서 자녀들을 낳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러면 지금 지가 전도하는 것은 말이 맞다 하고, 저가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할 건가 이 말입니다. 전에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내 쫓을 건가 어떡할 건가, 그러니까 그것도 말이 안 되는 거고, 지금 하늘의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때는 바로 요한계시록 20장이 지나서, 20장 천년왕국이 지난 다음에서 내려오는 세상인데, 이 예루살렘이 크기가 얼마나 크냐 하면


(계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타티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그러면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라 하는 이것이 얼마나 크냐 하면, 우리나라 면적 남북 전부 다 면적을 재면 22만923K이고, 이 예루살렘 길이에 그 거리가 얼마냐 하면은 총 면적이 36만K입니다. 그러니까 그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이 우리 대한민국 땅덩어리보다 조금 크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또 참으로 그런 일들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럼 안 되는 거를 뭐 하러 여기다 이 책에다 기록해 놨겠습니까? 안 되는 거를 뭐 하려고. 사람들 골치 아프게 만들려고요?


하나님은 ...하는 하나님이 아니시라고 하는데 왜? 성경 연구하면 골치 아픈데...

그러니까 우리 대한민국 지도 그림을 보고 비교해 볼 때 그만큼 되어야 히브리서 12장22절에서 쭉 보면 얼만한 사람이 거기서 활동을 해야 되겠는가? 한번 보겠습니다. 그만큼 커야 되겠는가? 안 커야 되겠는가?


(히 12:22-24)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14만4천명을 놓아두고 라도 거기 있는 사람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으냐면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 안에 있는 천만천사가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꽉 차가 있는 겁니다. 천만 천사와 하늘의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 장자들의 총회가 무슨 교회만 한가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교회 크기 정도면 수천만 개가 되어야 거기 장자들의 총회에 한쪽 구석에 채웠다 할 것입니다.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 의인의 영들은 1900년 동안 환란가운데 죽은 사람도 있고 어려운 가운데서 핍박 받아 죽은 사람들이 있고 그 수가 해변가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의인의 영들이 그 예루살렘 안에 있자면 얼마나 커야 하느냐 하면 우리 한국의 땅덩어리 가지고도 사실은 작지요 … 그러하고 우리 14만4천 성도들이 그 안에 들어가서 칸칸이 다 차야 되겠고 우리 14만4천이 있다고 해서 하늘의 천만천사들이 없는 게 아니고 하늘의 장자총회가 그 안에 있습니다. 해마다 장자총회를 열어야 되기 때문에 그 장자총회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 대한민국에 보면 저기 서울의 여의도 광장에 가서 그만 큰 집을 하나 지어놓고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국회의사당 그거 하나 크게 지어놓고 있어요. 거기는 바로 국회의원들이 일을 한다 이겁니다.


하늘의 예루살렘 장자총회 한 번씩 모이면 은 그 어마어마하게 큰 것이 하나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런데 예수님께서 직접 한번 들어가셨다는 데를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히 9:11-12)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시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여기 보니까 어떤 장막이라고요 대제사장으로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시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8:1-2)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여기 보니까 주께서 베푸신 큰 장막 이세상의 장막과 비교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하늘의 장막을 보니까 지상의 장막은 그림자 조그만 그림자로 만들어 놓은 것 밖에 안 됩니다.

그렇지 만은 저기 중동에 있는 예루살렘은 사실상 제가 가보지는 않았지만 제가 상상을 해보니까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그러나 실물은 얼마나 클 것이냐? 우리 사람들이 이런 말하면 제대로 가르치면 되는데 거기서 변명을 하려고 이상한 소리들을 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 하느냐 하면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다 했다고 이사야61장 왜 그런 소리가 나왔나?


(사 66: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그러니까 하나님은 집도 없고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까.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온 우주에 충만하신 가만히 앉아 계신 그런 분으로 생각한다. 그럼 왜 이런 말씀하셨는가? 그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통해가지고 저 일곱 집사 가운데 돌에 맞아 죽은 사람 있죠. 그 스테반이 이 성경절을 가지고 어떻게 대답 했는가? 한번 봅시다.

(행 7:47-50)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하고 스테반이 바리세교인들 앞에 강력히 증거했습니다. 그러면 여기 무슨 말씀이냐 하면 그 당시 예수님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성전 휘장이 찢어졌고 성소와 지성소가 갈라져서 누구든지 예수의 피로 가지고 담대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놨는데 지상에 성소가 필요 없는 것이고 하늘 성소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만든 성소하고 주께서 베푸신 그 큰 성읍 한국땅덩어리 보다 큰 예루살렘하고 비교하면 어떻겠습니까? 사람의 손으로 만들은 지은 전에 계시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느냐?


(행 17: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모든 장로교나 감리교나 천주교는 하나님 오신다고 땅에다가 큰 건물을 지어놓고 거기다가 하나님 여기 계십시오. 하고 이런 식으로 만들고 하겠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으면 어디 계십니까? 하늘에 계십니다. 아까 히브리서 말씀과 같이 여기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사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여기 새하늘과 새 땅은 어느 쪽에 있죠? 베드로후서 3장13절에 있고 또 요한계시록 21장 그거 먼저 봐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 21: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사 65:17-19)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여기 보니까 지금 예루살렘을 창조한다 그랬는데 여기 보니까 지금 예루살렘을 뭐한다. 그랬죠? 창조 한다고 그랬습니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라 했지만 이것은 우리 인간들이 지은 전에 계시지 않는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인데 공동번역을 한번 보겠습니다.

(사 65:17-19공동) 『보아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지난 일은 기억에서 사라져 생각나지도 아니하리라. 내가 창조하는 것을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나는 ‘나의 즐거움’ 예루살렘을 새로 세우고 ‘나의 기쁨’ 예루살렘 시민을 새로 나게 하리라. 예루살렘은 나의 기쁨이요 그 시민은 나의 즐거움이라, 예루살렘 안에서 다시는 울음소리가 나지 않겠고 부르짖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리라.』

자 그러면 여기 예루살렘 안에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 나지 않겠고 부르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했어요. 요한계시록 22장 거기서도 뭐라 말했죠?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요한계시록 21장하고 이사야 65장17-19절로 볼 것 같으면 똑같이 되어 있습니다. 이 새 예루살렘을 창조하셔 가지고 물론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이 온 우주가 당신의 보좌라 했으니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모든 구원받는 산성도 14만4천 성도들을 위해서 거룩한 성 웅대하고 이것은 웅대하다는 것은. 아무리 땅에서 좋은 도시가 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전체만 한 도시는 없을 겁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 가더라도 대한민국보다 더 크니까요 이런 것이 있는데 이걸 갔다가 유명무실 하는 것 무슨 유령도시로 생각한다 이말이예요. 유령도시를 무얼 보고 유령도시라 합니까? 말만 있고 없는 것, 유령도시를 만든다. 그런데다 비유한다 이말이예요. 아 그러면 하늘나라도 누가 …. 아무것도 없는데, 이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니까…. 하잖아요? 그들이 무엇을 할 겁니까 그 여자들이 더구나 여자들은 잠잠하라 했는데 자 그럼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요 14:1-2)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라는 뜻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좀 더 읽어보고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여기 보면 예수님이 지금 제자들을 떠나서 할 수 없이 중간에 가야 되겠는데 제자들을 떼어놓고 갈려니까 마치 아기어머니가 처마꼬리잡고 앙앙 울고 하는 것과 똑같거든요 그래서 좋은 말로 달래는데 내가 가서 있을 곳을 예비하면 너희도 나 있는 곳으로 데려 갈 테니까 좀 기다려라 하는 그런 식으로 달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하나 좀 더 볼 것은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

이 말씀을 공동번역을 한번 보겠죠.

(요 14:2 공동)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거기 없는 것을 덮어놓고 거짓말로 있다하고 내가 이렇게 이런 말 하겠느냐?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한 그 말씀이 만일 거기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한 것은 분명히 있다. 그 말이요 그러니 얼마나 이것을 더 똑똑하게 말합니까? 그리고 나 있을 곳을 예비하러 간다 해놓고 지금 와서 엄수인씨 딱 내려 보내 놓고 엄수인씨가 너희 있을 곳이다. 새 예루살렘이다. 이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시간이 많이 갔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그런 허무맹랑한 그런 소리에 귀를 담지를 않아야 되겠습니다.


아멘